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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2008/9/17
홍성권 사역자 2008-09-20 추천 0 댓글 1 조회 543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눅 5:1~11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에도 나오고 마가복음에도 나오고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안나옵니다. 너무나 많이들은 말씀인데 마태복음에 보게 되면 4장 18절부터 22절까지 제자들을 부르시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보게 되면 1장 16절부터 20절까지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 두 가지 말씀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가셨던 이 일이 예수님과 베드로가 처음 만나는 사건이 아닌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번 볼까요? 요한복음 1장 35절에 보게 되면,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세례 요한이 잡히기 전에 예수님의 제자였던 두 사람이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세례 요한하고 같이 있다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를 하니까 이 두 사람이 주님을 좇아갑니다. 그 중의 한 명이 안드레입니다. 그래서 안드레가 자기 형제인 베드로에게 다가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을 하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요한복음 1장 38절부터 41절에 나옵니다.

이 때 베드로는 분명히 예수님을 만났는데, 이 때는 세례 요한이 헤롯 왕에게 잡히기 전입니다. 그런데 이 누가복음 오늘 5장 1절부터 11절의 사건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동일하게 나오는 기사인데 마태복음 4장 12절에 보게 되면, 이 사건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시기 그 직전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이게 4장 12절입니다. 또, 마가복음 1장 14절에도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오늘 읽었던 이 누가복음의 사건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시는 이 사건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만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것인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왠지 모르지만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하룻밤을 유하고 지내다가 베드로가 예수님하고 떨어져서 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제 오늘 읽었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봅니다. 그러면 이게 베드로가 예수님을 떠났던 사건인데 왜 떠났을까요? 메시야라고 말하고 형이랑 함께 갔는데, 그래서 메시야라고 함께 좇아갔는데, 왜 베드로가 예수님을 떠나서 고기를 잡고 있을까요?

성경에는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사역이 세례 요한이 잡힌 후부터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가복음 1장 14절에 보게 되니까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라고 표현이 나옵니다.

세례 요한이 잡히기 전에는 예수님은 조용히 앞으로의 공생애 사역을 준비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는데, 메시야라고 생각하고 만났는데, 세례요한이 잡히기 전까지는 예수님이 어떤 기적도 행하시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의 증거를 보여주시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다가 실망하고, 아마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라고 말하고, 예수님을 떠나가서 다시 세례 요한에게 가려고 했는데, 세례 요한도 잡히니까 갈 데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갈 데가 없어지면 어떠하겠습니까? 전에 하던 일, 고기 잡으러 간 겁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이 5장 사건을 통해서 배신하고 떠나갔던, 메시야가 아니라고 배신하고 떠나갔던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어떻게 다가가시는 지를 보게 됩니다. 5장 1절에 보게 되면 “무리가 옹위해서” 예수님이 놀라운 기적과 역사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옹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십니다. 무리들을 몰고 오신 겁니다. 누구에게 로요? 베드로에게로. 계획적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에게 찾아가신 겁니다. 배신하고 떠나갔던 베드로에게. 그러면 그런 시각에서 오늘 이 누가복음을 보게 되면 굉장히 느낌이 달라지는 겁니다.

가서 보니까 배가 두 척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다가가셔서 배 좀 빌려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갔던 사람들에게 다가가시는 방법은 우리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우리가 부끄러움을 느껴서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도록, 마치 우리가 예수님께 도움을 드리는 형태로 다가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배를 빌려드렸습니다. 배를 띄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다가가셔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베드로의 마음을 하나님이 준비시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준비시키는 겁니다. 베드로의 그 마음을 준비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가 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을, 밤새도록 잡고 싶었던 그 일을 주님께서 시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이 “우리가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도록 애써 봤는데 못 잡았습니다.” 못 잡았죠. 왜 못 잡았을까요? 예수님 만나려고 못 잡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냥 못 잡은 겁니다. 애 써도 못 잡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돕습니다.

그래서 던지라고 했는데, 베드로가 여기 말씀을 보게 되면, “밤새도록 수고했는데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이 얘기는 무슨 얘기냐면 믿음하고 상관이 없는 얘기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이 말은 내게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가 그물을 던지면 그물에 고기가 많이 잡힐 거라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개념은 이 성경 구절에는 없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에 보게 되니까 뭐라고 쓰여 있냐면 “because you say so, I will let down the nets.” 직역하면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내가 그물을 내립니다.” 말씀하시니까 내린 거지 말씀하셔서 믿고 던진 게 아닙니다. 고기가 잡힐 거라고 믿고 던진 거 아닙니다. 그냥 주님이 말씀하시니까 하기 싫어도, 고기 안 잡힐 거 뻔히 알아도, 지금은 고기 잡히는 시간이 아닌 거 뻔히 알아도, 주께서 던지라고 하시니까 그냥 던지겠습니다. 그러고 던진 겁니다.

자,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고기가 엄청나게 잡혔습니다. 한 배도 모자라서 두 배에 가득 차서 잠길 정도로 잡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주께서 말씀하시지도 않았는데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놀라운 것은, 중요한 것은 믿느냐 안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말씀하셨냐가 중요한 겁니다.

다음 날 다른 사람이 그 깊은 곳에서 그물을 던지면서 어제 예수님이 던지라고 그랬으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으니까, 그 장소에 가서 그물을 던져서 고기가 그렇게 가득 차게 나올 것을 믿고 던졌다고 고기가 잡히겠습니까? 안 잡힐 겁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옆에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라는 거 하면 되는 겁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반응이 참 재밌습니다. 그 고기가 잡히지 않을 시간에, 밤새도록 잡았는데도 못 잡고, 이제 동이 트고 해가 떠서 고기가 없는 시간이 되어서, 이제 그물을 씻고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시니까, 시간은 또 지나가니까 햇빛이 또 더 나니까 고기는 더 안 잡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고기가 잡힌 겁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고기가 잡히는 시간이 아닌데도 고기가 그렇게 많이 잡혔기 때문에 놀란 겁니다. 기적입니다.

기적을 보게 되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와~ 놀랍다. 와~ 대단하시다. 이렇게 반응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반응은 무릎 아래 끓어 엎드립니다. 그리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게 잘 이해가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베드로의 표현이 베드로가 전에 예수님을 만났다가, 배반하고 떠나가고, 세례 요한이 잡혀서 스승도 없어지고, 갈 데가 없어서 고기 잡고 있는데, 그 순간에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됐고, 메시야로서의 놀라운 권능과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그 예수님의 소식을 들으면서, 베드로는 아마 예수님께 가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배신하고 떠났기 때문에. 자기가 원했던 것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예수님을 떠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가지 못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겁니다. 말씀하시는 겁니다. 눈앞에서 기적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오늘 한 이 고백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 고백은 바로 이런 고백일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배신하고 떠났던 사람입니다. 저는 주님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주님을 떠났기 때문에, 주님이 저를 떠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저를 떠나주십시오.” 이런 고백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 때 주께서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 베드로가 처음으로 만난 건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대단한 믿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냥 한 번 딱 만났는데, 주께서 오라 그러니까, 다 던져두고 그냥 갔습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런 믿음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함께 보니까, 이 사건은 그냥 베드로가 믿음이 좋아서, 첫 번째 만남에 그냥 부르심 가운데 예수님께 헌신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되는 겁니다. 만났다가 내가 원하는 거 못 얻으니까 떠났던 사람입니다. 다시 가고 싶어도 못 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겁니다. 이 얘기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이란 뜻입니다.

이제 더 고민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어려워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나는 자격이 없다고도 말하지 마십시오. 배신하고 떠났던 베드로에게 찾아가 주셨던 예수님의 그 마음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은 예수님이 고통당하시겠다고 결정하신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그 결정은,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께 드린 그 수많은 고통을 겪으시겠다고 결정하신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여기 있는 겁니다. 용서입니다.

배신하고 갔는데, 온 게 아니라 찾아가셔서, 나는 죄인이라고 제발 떠나가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이제 제자로 부르시는 겁니다. 여기에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예수님을 만나는 겁니다. 전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고 싶어서 예수님께 갔다면, 그것을 만족하지 못하니까 예수님을 떠나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베드로에게 찾아 온 예수님, 말씀을 통해서 마음을 다 준비시켜 주시고,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권능을 보게 하셨고, 그리고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취하는 새로운 일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던 겁니다. 이제 예수님이 누군지 안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거 찾는 거 아닙니다. 이제 예수님 만난 겁니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한 겁니다. 배를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으니라.

그런데 배에 가득 찬 게 뭐죠? 물고기가 가득 찼습니다. 그냥 배만 버린 게 아닙니다. 그렇게 잡고 싶었던, 그래서 밤새도록 애 썼고, 예수님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 그렇게 갖고 싶었던 거, 그렇게 원했던 것이 눈앞에 이미 있는데.

저는 배만 버려두고 간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두 배에는 물고기가 가득 찼습니다. 조금 아깝습니다. 팔고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왜 관심이 없을까요? 왜 물고기가 가득 찬 두 배가 관심이 없을까요?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것을 버려두고 갔을까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고는, 배신하고 떠나갔는데, 주님을 버렸는데,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끝까지 붙들고 계신다는 그 사랑을 경험하지 않고는, 누가 예수님을 좇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버립니까? 아까워서.

더 큰 가치를 발견하니까, 이 두 배에 가득 찬 고기 배보다 더 큰 가치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하니까, 예수님이 따라와 하니까, 다 버리고 좇아가는 겁니다. 그 사랑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무엇을 갖고 싶으십니까?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목말라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예수님을 떠났던 베드로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수없이 떠났고, 떠나고 있고, 또 그런 것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격이 없다고 말을 하고,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이 밤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시 찾아오신 겁니다. 생명이 없는 사람들에게, 생명 되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 생명을 내가 받고, 그 생명을 나누어 주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던지라는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겁니다. 따라 오라는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겁니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내게 원하시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듣고, 그럴 때는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겁니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겁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하고, 이 누가복음 5장 이 말씀을 보게 되면 생각나는 찬양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우리 함께 이 찬양을 부르면서, 내가 바로 베드로처럼 주님을 떠난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헌신이었고, 제가 갖고 싶은 것만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주님을 떠난 지도 모르게 주님을 떠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갔던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 오셔서, 그 마음을 녹여 주시고, 용서해 주셨고, 새로운 일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그 은혜가 제게도 필요합니다. 그 마음을 가지신 분들은 이 찬양으로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가까이 나아가시겠습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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